주제: “일본산“이 이주 노동자들에게 큰 피해를 가하다

“종종, 나는 고용주의 아내인 오쿠산(oku-san)에게 왜 내 봉급만 다르냐고 물어본다. 그녀는 나에게 조용히 하라며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 샌디, 캄보디아에서 온 기술 인턴

2015년 여름, May는 모국인 중국에서 전화를 받았다. 고용주가 걸어 온 전화였고, 그녀에게 일본에서 일하도록 장려하는 전화였다. May는 거의 50 세였고, 숙련된 재단사이자 의류 종사자였다. 중개소에서는 May에게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위로했고, 중국 정부는 외국으로부터 노동자를 수입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어, 기술 인턴 훈련 프로그램(Technical Intern Training Program : TITP)를 진행하였다. 더 나은 봉급을 받을 수 있을거라 예상하며 May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2016년 5월 그녀가 일본으로 오기 전에 그녀는 중개소에게 환불되지 않는 보증금으로서 30,000 위안을 내라고 요청받았다. May는 보통의 노동자 계급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중개소의 수수료를 감당할 수가 없었고, 일본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면 그녀의 봉급으로 중개 수수료를 내기로 약속하였다. 그녀는 일본으로의 여행을 시작하였고, 2016년의 새로운 49601명의 새로운 외국 산업연수생이 되었다.

TITP 프로그램 하에서 산업연수생들은 일본에 1년 동안 훈련을 받기 위해서 머물고, 다른 한 해는 인턴십을 하며 실제 작업장에서의 기술을 위해 훈련을 받는다. 그렇게 한 후, 그들은 연장을 신청하여 일본에 최대 3년 머무를 수 있게 된다.

May 가 일본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그녀는 주최측으로 바로 이동되어 기본 일본어 교육을 받았으며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온 동급생들과 훈련을 받았다. 종이에 적혀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그녀는 한달이 지나고서 바로 “실전 인턴 훈련“ 명목으로 일자리로 파견되었다.

이제, May는 그녀가 실전 인턴 훈련을 아카수카 시수라는 공장에서 수행할 것이라는 것만을 알고 있으며, 이 회사는 청바지를 만드는 데에 특화된 회사이다. 우리는 나중에 몇몇 일본 패션 브랜드에 대해서 논의할 것인데, 그 중 Gallardagglante, Perle Peche 그리고 Human woman 은 모두 May의 고용주에 의해 연결된다. 공장은 Gifu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곳은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지방행정구역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Shirakawa-go가 있는 곳이다. May는 조용한 동네에 도착하였고, 빌딩도 모두 서로 닮아 있었다. 중년의 남자가 나를 반겼고, 그가 공장의 고용주이라고 하며 그녀와 두 명의 다른 연수생들을 데리고 기숙사로 갔다. 그녀가 알아차린 첫 번째 요소는 낮은 수준으로 관리된 방이었다.

“기숙사에 들어서는 순간, 아무도 그곳에 살지 않았던 것처럼 방이 더러웠습니다…방은 너무 작았어요… 하루가 끝나고 난 후, 저는 생쥐들의 변을 봐야 했습니다! 저는 제 가족에게 기숙사가 우리 집만큼 좋지 않다고 이야기했어요.”

 

이후, May와 그녀의 동료들은 1층짜리 집으로 옮겨졌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일을 하고 잠도 자야 했다. May는 침대를 다른 중국인 이주 노동자와 나눠 썼고, 전체 기숙사에서 화장실은 오직 한 개였다. 여름에는 기숙사 내의 온도가 35도 까지 올라갔고, May와 다른 동료들은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일해야 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 긴 노동 시간, 그리고 사기

TITP는 1993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일본 정부는 이 프로그램이 일본으로부터 개발도상국으로 기술과 능력을 전수하여 개발도상국의 인력 개발에 기여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을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이주 노동자들은 고령화되는 일본 사회에서 극대화되던 노동력의 부족을 완화하는 수단이었다.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8%에 달하게 되면서, 일본은 해외로부터 젊고 새로운 인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May 의 고용주는 옷을 만드는 데에 아무런 기술이 없었고, 그녀에게 어떠한 훈련도 제공하지 않았다. 우리가 검토한 두 가지 다른 케이스들과 비슷하게, May는 싼 노동력으로 취급되었고, 일본인 노동자에 비해서 착취에 더욱 취약한 노동력으로 대우받았다. May는 아침 8시부터 자정까지 일해야 했고, 그 사이에 쉬는 시간과 밥 시간으로 1시간 30분 정도를 가질 수 있었다. 그녀가 일주일에 6, 14시간에서 15시간 반을 일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Gallardagalante바지가 12,000옌 (110달러)에 쉽게 소비될 수 있지만, May는 한 시간에 300옌(2.73달러)를 벌어, 그녀가 바지를 사려면 4일치의 급여가 필요하다. 오랜 기간 동안 May가 알지 못했던 것은 Gifu 지역의 정부가 최저시급으로 754옌 (7.13달러)를 정해두었다는 것이다. 법에 의하면 25%정도의 시간 초과에 대한 수당은 허용되었지만, May는 제대로 된 초과수당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녀는 계속 옷을 만들어야 했고, 종종 매 주 있는 휴일에도 일을 했다.

“우리는 쉬는 날이 없기 때문에 항상 일을 한다. 가끔 있는 소중한 휴일에는 낮에는 잠을 자고 오후에는 장을 보러 간다.”

2년 동안의 착취 이후에 May는 ROUDOU SOUDAN.COM (労働相談.COM)과 연락이 닿았는데, 이 기관은 노동 관련 비정부기구이자 클린 클로즈 캠페인 네트워크의 일원이며 법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곳이다. May는 고용주의 위반 사항에 대해서 법적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했다. SOUDAN.COM은 May에게 지낼만한 장소를 제공해주어,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머물 수 있게 도왔다. 지난 몇 년간, 아시아 지역에서 넘어 온 260명 이상의 이주 노동자들이 그 장소에서 지내야 했다.

일본 노동기준감사기관(Labour Standards Inspection Office)은 TITP프로그램에 참여한 7,000개 이상의 기업들과 감사 기관들이 노동관련 법과 규제를 위반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잘 인식하고 있고, 그것이 TITP 관련 법안을 2017년에 개정하고, 보호조치를 강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법을 제대로 집행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SOUDAN.COM의 대표인 Zhen Kai는 May의 사례를 법정으로 가져가려고 계획한다. “권력 기관들은 고용주의 말들을 액면가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고용주들은 종종 문서나 급료 명세서, 증거들을 법을 준수한 것처럼 보이게 조작하는 경우가 있다.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May의 전 고용주는 파산을 신청하고, 다른 기업에게 공장의 소유권을 넘기는 척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아들에게 판매한 것이었다. 이날까지 그 공장은 여전히 작업 중이며, 새로운 TITP 연수생들을 받아 고용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이주 노동자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고, “일본제 상품”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여 또한 증가하고 있다. TITP 연수생들은 일본 의류 산업의 노동 부족 현상에 대한 빠른 해결책이지만, 그들은 그들의 권리 무시당하며 노동착취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브랜드 회사들은 그들의 생산 라인을  외주화하여 싸고 유동적인 생산 모델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브랜드들은 고용주를 위해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는 브랜드들에게 책임 있는 공급망을 형성하고, 도급 및 하청업체에 대한 정기적인 검토를 하여 사회 구성원들과 소비자들에게 상품과 노동 기준에 대해서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청한다. 브랜드들은 본인들만의 행동 및 사업의 규칙을 정하고, 노동자들과 대중들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는 인권 실사 계획(Human Rights Due Diligence)을 수립해야 하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제대로 된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

영어 전체 보고서는 여기입니다.


추가적인 노동자 관련 이야기

캄보디아 연수생의 사례

Sandy와 Pony 는 캄보디아의 두 개의 다른 도시에서 왔다. 그러나, 그들은 Phnom Penh에서 일본으로 연수생을 보내는 것을 돕는 중개소에서 만나게 되었다. Sandy 와 Pony는 일본의 업무를 배우면서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두 사람 모두 지인들로부터 프로그램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Pony는 연수생으로 일본에 방문했던 친구들로부터 프로그램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일본에 가기 전에 그녀는 의류 공장에서의 경험을 쌓아왔었다. 그녀는 캄보디아에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박음질 공장에서 일을 해왔다. 따라서, 그녀는 일본에서 의류 분야에 종사하는 것을 선택했다.

Sandy의 경우, 그 언니도 또한 일본에서 연수생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도 일본에서 일을 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캄보디아의 시장에서 과일을 팔앙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의류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없었다. 그들은 지원비를 내는 것을 요청받았고, 그 지원비의 대가로 비자와 지원 과정을 중개인이 대신 밟아주는 조건이었다. 지원비는 꽤 큰 규모였고 (최대 6,000달러) Pony는 일본에서 일할 수 있는 지원비를 내기 위해 캄보디아의 은행에서 대출을 해야했다.

Sandy와 Pony는 일본에 각각 2016년 6월 1일, 7월 20일에 도착했다. 제작 회사에서 일하기 전에 그들은 한 달 동안 도쿄에서 일본어를 공부해야 했다. Pony는 일본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Gifu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했다. 고용주의 아내는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고, 바로 그녀를 회사로 데리고 왔다 한편, Sandy는 스스로 다른 길로 회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캄보디아 연수생들로부터의 괴롭힘

Sandy는 캄보디아 동료들로부터의 괴롭힘을 마주하자, 공장에서 첫 해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Pony보다 한 해 일찍 일본으로 왔다. 따라서, Pony가 나이는 더 많지만, Sandy가 Pony의 선배였다. Pony는 그녀의 업무 성과에 대해서 그녀의 상관이 아내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강조한다. 게다가, 상관은 Pony에게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 줄 생각이 없었다. 이것은 Pony와 캄보디아 상관 사이에 갈등을 일으켰다. 게다가, 상관은 항상 Sandy에게 화가 나있었다. 괴롭힘의 문제점은 연수생 사이에서 흔한 일이었다 다양한 회사에서는 회사의 고용주 대신에 상급 연수생들이 새로운 연수생들에게 교육을 하는 편이었다. 그 결과, 몇몇은 스스로가 다른 연수생들에 비해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래서 새로운 연수생들을 괴롭히면서 본인들의 힘을 보인다.

노동의 부족

그들의 봉급은 60,000 옌 (551달러)를 한 달에 받았고, 음식값과 집 대여 값을 제외하기 전 금액이다. 제외를 하고 나면, 금액은 24,000옌(220달러)를 한 달에 받는 셈이다. 보통, 그들은 일을 아침 8시 30분에 시작하고, 점심은 12시에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더 많으면 그들의 점심 시간이 20분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점심 이후에 그들은 5시 30분까지 일을 하다가 저녁을 먹어야 했다. 그들은 3시에 10분 동안의 휴식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그것도 그렇게 바쁘지 않을 때에만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저녁시간으로 case A의 May 처럼 30분을 가졌다. 그 이후, 그들은 저녁 6시 30분까지 초과근무를 해야했다. 주문량에 따라서 밤 11시나 새벽 1시까지 일을 해야할 수도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회사에 오직 연수생들만 있었기 때문에 새벽 3시까지 일을 해야했다. 초과근무 수당은 첫 해에는 한 시간 당 300옌, 그 다음 해에는 400옌, 그 다음에는 500옌이었다.

회사에 직원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수생들은 박음질부터 찍어내고, 물건을 운반하는 등 대부분의 업무를 해야만 했다. Pony가 전에 관련 공장에서 일을 할 때에는 노동자가 해야하는 것은 기우는 것 밖에 없었는데, 그것과는 다른 실정이었다. 게다가, 공장의 규모 또한 캄보디아의 그것보다 훨씬 큰 편이었다. 휴일에는 비록 일요일에는 하루 휴식을 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요일이나 휴일에 주문이 많을 때에는 일을 하기도 했다. 회사에는 회사 고용주의 처남이 일하고 있었다. 고용주과 고용주의 아내, 고용주의 처남이 모두 휴가를 갔기 때문에 연수생들은 일을 모두 완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고용주의 처남이 주고 난 필수 완료 항목들을 끝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들이 하루 동안 긴 시간을 일해야 했고 휴일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쉬는 날에는 잠을 자기에 바빴다.

협상

친구들과 언니의 상황을 각각 비교해본 후, 그들은 그들이 평균보다 더 낮은 봉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들은 고용주과 고용주의 아내에게 그들의 봉급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봉급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답만 받았다.

종종, 나는 고용주의 아내인 오쿠산(oku-san)에게 왜 내 봉급만 다르냐고 물어본다. 그녀는 나에게 조용히 하라며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 샌디, 캄보디아에서 온 기술 인턴

중국인 노동자의 경우

연수생이 되다

그들의 아들이 20대였기 때문에, Candy는 해외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었다. 그녀의 친구가 프로그램에 대해서 소개해줬고, 비록 50대라도 그녀를 받아주는 회사가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녀의 가족의 재정 상황은 꽤 안정적이었지만, 그녀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그녀는 이렇게 일하는 것이 모국에서 그녀의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지원 단계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녀는 외국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강한 선호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도전하도록 하고 싶었다. 따라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만약, 그녀가 실패한다면, 그녀는 모국에 남아 있으면서 의류 회사에서의 일을 지속하면 되는 것이었다. 지원 이후 12일이 지난 후, 그녀는 인터뷰를 위해 초대받았고, 보증금으로 1,000위안(146달러)를 내도록 강요받았다.

이후에, 그녀는 중국에서 일본에서 일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5개월의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중개소로부터 소식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그녀는 중개인을 찾아서 그녀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중개인은 그녀가 9월쯤에는 일본으로 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연수생들과 논의하다가, Candy는 그녀가 환급이 불가능한 보증금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많이 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36,000 위안(5272달러)를 냈는데, 다른 중국 연수생들은 35,000위안(5126달러 정도)를 낸다. 그녀는 따라서, 중개소에서 1,000위안 정도를 착취했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학교와 회사를 모두 가다

다른 대부분의 연수생들과 다르게, Candy는 “실질적인 훈련“을 회사에서 겪어야 했고, 연수 기간 동안 그녀는 학교를 가야 했다. 그녀는 하루에 3시간에서 4시간 동안 수업을 받기 위해서 학교를 가야 했다. 학교를 갔다 온 이후, 고용주은 그녀를 공장으로 다시 데려가기 위해서 왔다. 그녀는 오후 4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해야 했다. 이것은 일본에서 그녀의 첫 달내내 겪은 일정이다. 프로그램에서는 연수생들이 첫 기간 동안은 이론적인 훈련과 언어 관련 훈련만 받기로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공장들은 연수생들이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공장에서 일을 하도록 강요하였다.

해는 어디 있는가?  

일본에서의 삶에서를 이야기할 때, Candy는 그녀가 절대 해를 볼 수 없다는 말을 반농담으로 했다. 그녀 회사의 건물의 첫 층은 회사 사무실이었고, 두번째 층은 기숙사, 세번째 층은 공장이었다. 기숙사와 공장이 오직 한 층밖에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회사는 이른 아침부터 연수생들이 일을 하도록 요청했다. 그들은 새벽 5시 15분부터 일을 시작했고, 오후 12시까지 일을 해야 했다. 점심을 먹는 30분과 저녁을 먹는 20분을 제외하고, Candy는 하루에 17시간에서 18시간을 일해야 했다. Candy의 일은 그녀를 하루 종일 바쁘게 했고, 그녀는 회사의 노예 수준으로 일해야 했다.

쉬는 날은 어디 있는가?

Candy는 회사에서 일하는 첫 6개월 동안 쉬는 날을 받지 못했다.

“모국에서는 이런 것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저희는 한 달에 4일 정도 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하루종일 쉬는 날이 없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는 일을 지속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그저 집에 돌가가고 싶을 뿐입니다.”

일본에서의 새해에도 Candy는 일을 해야했다. 음력 새해에 Candy와 다른 중국 연수생들은 모국에서의 큰 공휴일에 참여하기 위해서 하루를 쉬려고 결정했다. 그들은 고용주에게 하루 휴일을 줄 것을 요구했고, 고용주은 허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중국의 새해에서의 휴일을 지키기 위해 그 전날 새벽 1-2시까지 일을 해야 했다.

그 후, 그들은 고용주과 한 번 더 긴 노동 시간을 아침 7시에서 오후 11시까지로 단축시켜달라는 협상을 하고, 또한 매 달 하루의 휴일을 달라고 요청했다. Candy 는 종종 공장이 별로 바쁘지 않다고 생각될 때, 고용주에게 하루 더 휴일을 주어 일주일에 이틀을 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쉬는 날에는 May와 비슷하게 오전에 내내 잠을 자고, 오후에는 근처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곤 했다. Candy 는 주변을 여행하고 싶었지만, 움직이기에는 너무 피곤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Candy의 주장에 따르면, 고용주의 아내는 노동 시간과 초과 근로 시간, 휴식 시간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라고 시켰다고 한다. 기업이 법적 책임과 법을 위반했다는 것으로부터 피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이 자명하다.